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키이우 전투 (문단 편집) == 개요 == '''키이우 전투/키예프 전투'''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전일인 2022년 2월 24일부터 2022년 4월 2일까지 벌어졌던 전투다. [[우크라이나]]의 [[수도(행정구역)|수도]] [[키이우]](키예프)[* '키예프'는 [[러시아어]] 명칭이며, '키이우'는 2022년 3월 1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표기 변경 요청 후 [[한국방송공사]]와 [[국립국어원]]이 합의한 [[우크라이나어]] 한글 표기이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06554|#]]] 점령을 시도하는 [[러시아군]]과 이를 방어하는 [[우크라이나군]]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당초 러시아군이 불과 개전 9시간 만[* 이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예상한 것보다도 더 빠른 진격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러시아군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지역을 그대로 뚫고 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나 서방은 당초 러시아가 방사능의 오염을 피하기 위해 체르노빌을 우회할 것이라 예상했다.][* 생각해 보면 이 판단도 오판이었던 것이, [[T-72]] 등 냉전 시절 소련군의 산물이었던 러시아군의 전차들은 모두 핵전쟁 상황에서의 운용을 가정하고 화생방 방호 시설이 완비되어 있기 때문. 해치를 모두 닫아버리면 방사능에 오염된 구역도 돌파가 가능하다.]에 키이우 북부에 도달하면서, 키이우가 아무리 오래 버텨도 며칠에서 일주일 안에는 함락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수반이 [[우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모두 키이우에 남았고]], 이에 우크라이나군과 키이우 시민들도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키이우 시 외곽에서 진격이 정지되었으며, 심지어 전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와 키이우 시장인 [[비탈리 클리츠코]]까지 직접 총을 들고 저항했다. 운명의 첫 주가 지난 후에는 전선이 교착화되었고, 러시아군의 산발적인 포격과 공습이 이루어지면서 첫 주만큼의 대규모 지상전은 발생하지는 않았다.[* 3월 첫째 주에 키이우로 무려 64km (40마일) 길이의 러시아군 행렬이 향했고 따라서 대규모 [[시가전]]이 전개된다는 예측이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행렬은 물자 부족과 우크라이나군의 공습/포격 등으로 소수만이 키이우 인근에 도착하였으며, 나머지 부대들은 다른 뿔뿔히 전선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시 외곽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다수 진행되었고, 러시아군이 지속적으로 키이우에 [[게릴라]] 공격[* [[공수부대]] 투하,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체첸 부대 파견, 시내에 민간인으로 위장한 [[스파이]] 침투 등.]을 시도하였으나 대부분 실패하였다. 그리고 3월 셋째 주부터는 우크라이나군이 '''일부 부대들을 포위하는 등''' 역공을 가하면서 반격의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4월 2일, 러시아군이 키이우의 점령을 포기하고 동부, 남부 전선에 전력을 집중하도록 전략을 수정하면서 키이우와 근교 지역에서 모든 러시아군이 철수하였다.[* 5월까지 소수의 낙오 병력이 분산된 채 계속 도주 중인 걸로 추정된다. 간간이 이쪽에서 새로 파괴된 러시아군 차량이 보고되기 때문.] 이로써 '''키이우 전투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종료되었다.'''[* 다만, 키이우 전투의 승리와는 별개로 키이우시에 대한 러시아군의 대규모 미사일 공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